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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왕 이철호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1-01-19 18:10
조회
488

라면왕 이철호


노르웨이에서 “Mr. Lee 주세요.”라고 하면 라면을 준다. 


노르웨이 최초 한국인, 

빈털털이 전쟁 고아,

부상당한 다리 치료를 위해 노르웨이까지 건저가 43번에 걸친 대 수술.

하루 한 끼 물에 불린 새 먹이용 빵밖에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을 만큼 불편한 몸이었지만,

마침내 총리보다 유명한 사람이 되어

노르웨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게 된 국민적 영웅.


라면왕 이철호씨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노르웨이에서 미스터 리는 가장 많이 팔리는 라면의 상표이자 라면을 최초로 전파한 사람이며 

노르웨이인들과 처음으로 함께한 동양인인 이철호를 뜻하기 때문이다. 

라면의 발상지인 일본을 누르고 노르웨이의 라면 시장에 진출해 성공한 그를 만나보았다.


“난 어렸을 때 6.25 전쟁으로 가족과 뿔뿔이 흩어지게 됐어요. 

혼자 남은 어린아이에게 전쟁은 정말 끔찍했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철호의 인생은 어찌 보면 암담하고 힘들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보면 매번 나에게 성공할 기회를 주고 있었던 것’ 이라고 말한다. 

그는 6.25당시 홀로 피난길에 올랐고,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서야 

미국 군인들을 따라 미군부대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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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가 미군부대에서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아 기습적으로 날아든 포탄 파편에 

오른쪽 다리를 맞아서 큰 부상을 입게 되었고, 

당시 의료 기술이 좋지 않았던 터라 그는 ‘꼼짝없이 죽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 부대에서 구두닦이로 열심히 일을 하고 어린나이에도 군인들에게 영어를 배워가며 

그들과 의사소통 하려는 모습을 예쁘게 봐왔던 군인들이 그를 

노르웨이의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17살의 한국인 이철호의 노르웨이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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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에서의 삶도 17살의 어린나이의 소년인 이철호에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돈을 벌어야 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군부대에서의 경험을 살려 구두닦이를 하려고 해도 전문 면허증이 있어야 했고, 

면허증을 따려면 돈을 내고 전문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루하루 배고픔을 남들이 버린 빵 부스러기를 수프로 만들어 먹거나 물에 불려 먹었지만 

그는 자신을 비참해 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께 굶지 않은 것에 감사기도를 하곤 했다고 한다. 


이철호는 항상 ‘이런 고생에서도 배울 건 있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하며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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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나를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들이 배고파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라는 꿈은 잃지 않았다. 

배고픔과 어려움은 이철호에게 요리사라는 꿈을 꿀 수 있도록 했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혼자 살아가면서 식당의 청소, 접시닦이, 호텔의 벨보이, 화장실 청소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주변의 이웃들의 도움으로 요리전문 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접하게 된 것은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감자 깎는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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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호텔에 막내로 들어갔을 때 이미 3년 전부터 감자 깎는 일을 해오던 동료가 있었다. 

그 동료는 매일 이철호에게 감자를 깎는 자신에 대한 환경을 불평했지만 그는 동료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3년 동안 진급은커녕 매일 감자만 깎게 시키는 것은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철호는 다음날부터 레스토랑에서 감자를 깎을 때 미리 하루의 요리 일정을 확인하고 카레면 카레에 맞게, 

스테이크면 스테이크에 맞게, 음식에 맞게 감자를 깎아 3년 동안 감자를 깎던 동료를 제치고 

6개월 만에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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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는 1968년 그의 나이 31살에 모국인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한국에 방문해 라면을 처음으로 맛보게 된 그는 특이한 면에 매콤한 국물의 매력에 빠져 

요리사로써 노르웨이에 라면을 전파하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한국라면을 사들고 노르웨이의 친구들에게 만들어주었지만 친구들은 맛이 없다며 먹기를 꺼려했다. 

노르웨이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1989년 라면스프를 개발해 처음 선보인 그의 라면에 대한 노르웨이 사람들의 반응은 

이철호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라면의 면발이 걸레같이 생겼다는 사람들, 

구불구불한 벌레 같다며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들까지 100이면 100 모두 라면을 꺼려했다. 


하지만 이철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돈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매장에 진열만 해달라고 사정을 했고, 매일 이웃집으로 찾아가 라면을 나눠주면서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먹어달라고 부탁했다. 


문도 열지 않고 무조건 “NO”라며 냉대를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철호는 ‘NO는 나에게 끝이 아니야. 

NO는 YES라고 말하게 할 수 있는 희망이야.’ 라고 되뇌었다.


3년 후 마침내 사람들은 라면 때문이 아닌 성실하고 유쾌한 

‘미스터 리’, 이철호를 좋아해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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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개발한 라면스프는 노르웨이인들의 마음을 차차 돌려놓았고 라면 3박스로 시작한 사업이 

연간 8천만 개 이상의 판매고를 올릴 정도로 큰 호황이 일어났다. 


몇 년 뒤, 그는 노르웨이의 최고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TV, 신문, 잡지 등 이철호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2001년 11월 노르웨이의 한 신문에서는 학생들의 단체 무단  결석에 대한 기사가 실렸는데, 

이철호의 라면 시식회에 참가하기 위해 단체로 학교대신 백화점으로 간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현재 노르웨이에서 중, 고등학교의 교과서에 실리는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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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는 모국인 한국을 알리기 위해 라면봉지에 라면의 맛을 한글로 표기해 팔고 있다고 한다. 

그의 남은 인생에 꿈이 있냐는 한 학생의 물음에 이철호는 


"대한민국을 유럽쪽에 널리 알리고 싶다."라고 이야기 했다.


비록 그의 인생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전쟁이라는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했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자신을 있게해준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파란색으로 그려져 있는 부분에 '소고기 맛'이라고 한국말로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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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마'라는 책을 펴내었다.

그는 그 책을 통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끊임 없이 노력하며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아픔을 이겨내라"는 조언을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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