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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어머니 '로자팍스'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1-01-05 11:04
조회
142

짐 크로우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1800년대 순회극단 백인 가수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흉내를 내며 부르던 노래 속의 주인공이었다. 

우스꽝스럽고 멍청하게 희화화된 흑인의 대명사가 짐 크로우였다. 

그리고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부의 주들이 공공장소에서의 흑백분리를 골자로 한 법을 제정하며 붙인 이름이 

‘짐 크로우 법’이었다. 


짐 크로우 법에 의해 기차와 버스, 학교와 식당, 화장실과 출입구가 시설 좋고 깨끗한 ‘백인전용’과 초라하고 더러운

 ‘흑인전용’으로 나뉘었다. 참기 힘든 굴욕이었으나 억압에 짓눌려온 흑인들 대부분은 항의조차 안한채 

그저 일상사로 견디어내고 있었다. 

연방대법원까지 ‘평등한 분리’는 위헌이 아니라며 등을 돌렸다.

그러나 로자 팍스는 달랐다. 짐 크로우가 임자를 만난 것이다. 

1955년 12월1일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에서였다. 퇴근길의 팍스가 올라 탄 버스의 36개 좌석은 금새 찼다. 

짐 크로우 법에 따라 좌석은 흑백으로 구분되었다. 


앞에서부터 14명의 백인이, 뒤에서부터 22명의 흑인이 앉았다. 

늦게 탄 백인 한명이 앉을 자리가 없었다. 

운전사가 백인좌석 바로 뒷줄에 앉은 4명의 흑인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뒤로 가라고 지시했다. 

그게 법이었다. 승객의 75%나 되는 흑인들은 앞문으로 타 요금을 낸 후 다시 내려 뒷문으로 타야했고 

백인좌석이 모자라면 양보해야하는데 백인과는 같은 줄에 못 앉으니 백인 1명을 위해 흑인 4명이 모두 뒤에 가서 서야 했다. 

운전사의 으름장에 3명은 일어나 뒤로 갔다. 


혼자만 그대로 앉아있는 팍스에게 일어날 거냐고 운전사가 물었다. “노우” 조용하나 단호하게 팍스가 대답했다. 

운전사는 버스를 세우고 경찰을 불렀다. 경찰에게 그녀가 항의했다. 


“왜 이렇게 우리를 차별합니까?” 

“나야 모르지요. 그러나 법은 법이니까, 당신을 체포합니다” 

체포된 팍스는 연행되어 지문을 찍히고 구금당했다.

2Q==

흑인여성 팍스에게 체포는 결코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거부는 현행법 위반을 넘어 생명을 위협당할 수 있는 무모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팍스는 지쳐있었다. 흔히 잘못 알려진 것처럼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인간이하 굴욕적 대우에 대한 인내가 한계에 달해 있었다. 

결국 이날 “노우”라는 그녀의 한마디는 미국역사의 진로를 바꾼 기폭제가 되었지만 

그 당시 팍스의 마음속에 이런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녀는 우연히 영웅이 된 평범한 재봉사도 아니었다. 

괴롭히는 백인 소년에게 벽돌을 들고 대항하던 10살 때부터 

팍스의 마음속엔 자유와 평등에 대한 신념이 자라고 있었다. 

결혼 후엔 남편과 함께 흑인권리 신장을 도왔으며 

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의 서기와 청소년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었다. 

실제로 팍스의 체포는 흑인운동가들에게는 오랫동안 간구해온 기도의 응답이었다. 

부당한 짐 크로우 법 폐지를 별러온 이들에게 팍스의 체포는 이상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근면하고 예의바른 모범시민 팍스가 체포되었다’ 


- 흑인 뿐 아니라 양심적인 백인들, 그리고 뉴스의 각광까지 당당하게 받을 수 있는 

민권운동의 상징으로 더 할 수 없이 완벽했던 것이다.

팍스가 체포된 다음날 NAACP의 지부장은 한 젊은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흑인들의 대대적 버스 보이코트 계획을 말하며 적극참여를 부탁했다. 

웅변에 뛰어나고 열정에 넘쳤던 26세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기꺼이 동의했다. 


팍스여사의 ‘용기’와 킹목사의 ‘꿈’은 이렇게 처음 만났다. 그후 10년 가까이 계속되며 

미국사회의 구조를 바꾸어 놓은 민권투쟁이 잉태하는 순간이었다.

흑인들의 오랫동안 쌓여온 분노가 폭발한 버스 보이코트는 대성공이었다. 

수만명의 흑인들이 몇시간씩 걸어서 출퇴근하고 18개의 흑인소유 택시회사들이 10센트의 버스요금으로 

택시를 제공하며 381일을 끌었다. 


버스회사들은 파산지경에 빠졌으나 총격, 방화, 폭탄, 살해위협도 끊이지 않았다. 

지역정부는 분리법 고수를 위해 갖가지 수단을 동원했고 연방의회는 강 건너 불 보듯 방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직과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폭력 아닌 평화로 맞서며 굴복하지 않는 팍스와 킹목사를 미전국과 전세계는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1년후 연방대법원은 분리승차를 위헌으로 규정하며 중단명령을 내렸다. 


‘로자 팍스’란 이름은 이렇게 역사의 한 부분으로 기록되었다. 


‘로사 팍스의 순간들’이라는 말을 쓴 사람은 넬슨 만델라였다. 

천안문광장에서 탱크에 맞서 자유를 외쳤던 중국청년을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불의에 맞서는 모든 저항을 

그는 ‘로자 팍스의 순간들’이라고 표현했다. 양심이 부를 때 두려워하지 않고 행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팍스처럼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불꽃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24일 92세로 타계한 팍스여사는 늘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내가 원했던 것은 자유였습니다. 

나 자신 뿐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자유롭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 ‘모든 인간’에는 미국에 뒤늦게 옮겨와서도 별 차별 받지않고 같은 혜택을 누리며 사는 우리들도 포함되어있다. 


최고의 명예와 존경을 받았지만 집한채 갖지 못한채 늘 가난했던 그녀의 일생에 경의를 표하며 

그녀에게 진 빚을 갚기위해 우린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한국일보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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