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墓碑銘)
사랑하는 사람을 혹은 사랑했던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입니다.
애증으로 점철된 사람조차도 한번 씩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거늘
평생 한 지붕 아래서 사랑을 나눴던 지아비나 아내,
부모 자식을 잃고 난 심정은 차마 헤아리기조차 힘들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남은 자'에게 주는 가장 큰 고통은
망자(亡者)를 더 이상 볼 수가 없고
그 음성조차 들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는 볼 수 없는 한(恨)과 서러움을
묘비명(墓碑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묘비명은 시(詩)입니다.
한 인간의 삶 전체가 응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죽음 앞에서 경건해지고 순수해지는 인간 본연의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한 편의 시(詩)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묘비명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건한 순수를
이끌어내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울림을 가져다 줍니다.
나유 기고가인 정윤재가 월간 조선에 소개한
'전국 묘비명 순례...돌에 새긴 시(詩)'에 나오는 묘비명입니다.
"난 괜찮다 하시며 늘 뒤에 서 계셨지요.
우리, 즐거울 땐 쉬이 잊어버리고 괴로울 땐 숨는 갈급함에
찾아도 그저 속없이 두 팔 벌려 싸안아 주셨지요.
늦은 바램이 꽃송이로 피워 올리오니 이젠 편히 쉬소서 - 자식 일동"
"어질고 고우셨던 어머니 너무 그립습니다.
이젠 더 이상 아프지 마시고 주님 곁에서 편히 쉬세요."
여인의 일생과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사랑이 절절히 배여 있습니다.
"그렇게도 그리던 고향 땅
한 많은 그리운 얼굴들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리"
"망향. 내가 나의 고통을 알고 내가 너의 고통을 알며 여기 잠들다"
한평생 고향을 그리다가 떠난 이의 망향(望鄕)의 정이 애절합니다.
"평생 밝은 마음 맑은 눈의 아이들과 함께 달리며 노래하다
이제 여기 들 꽃과 더불다"
평생 교육자로 살아 온 고인의 삶이 묻어 나는 듯 합니다.
"세홍아 7770일 동안 같이 하였던 추억을 그린다
고이 잠들어라 - 형 세웅"
동작동 국립묘지의 이 묘비명,
불과 이심 몇 해를 살다가 장렬히 산화한 아우와
함께 했던 날들을 세어보는 형의 심정에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습니다.
"그 날을 기다리며"
어느 성도(聖徒)의 묘비명입니다.
죽은 자가 바라는 '그 날'은 '부활의 그 날'일 것입니다.
남은 자들이 나의 묘비명에 어떤 글귀를 새겨 줄 것인가를 생각하며
인생의 목표와 미래를 진지하게 정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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