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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의 '알파걸' 김만덕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1-01-05 18:24
조회
219

18세기 조선의 '알파걸' 김만덕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과 사회성,적극성을 뽐내는 여성들을 '알파걸' 이라 부릅니다. 2006년 하버드대 댄 킨들러 교수가 만들 어낸 신조어라는데요.
자신의 앞길을 당당히 개척하는 용기와 시대를 앞서가는 뛰어난 감각, 타인을 압도하고 이끌어나가는 리더십 등이 '알 파걸'의 조건이라면, 신분제도와 남존여비 사상이 여성들의 삶을 짓누르던 200여년 전 조선시대에 이미 '알파걸 중의 알파걸'이 존재했었습니다.

img_214_3071_0.jpg김만덕(金萬德,1739∼1812)
조선의 전무후무한 자수성가 여성 상인,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한 '제주 의녀'로 이름을 남긴 김만덕(1739∼1812).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 혼자의 몸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이를 흉년에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내놓았으며, 공적을 인정받아 대궐에 초대되어 임금을 알현하고 사대부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말 그대로 파격적인 행보였지요.


만덕은 1739년 제주에서 아버지 김응열(金應悅), 어머니 고씨의 2남1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11살 무렵 극심한 흉년과 전 염병으로 부모가 사망하자, 친척들은 일을 할 수 있는 오빠들만 거둬들였고, 홀로 버려진 만덕은 인근에 사는 기녀의 도움으로 기방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밥을 먹을 수 있었지요.


기녀의 수양딸이 되었기에 자연히 기적에 이름을 올릴 수 밖에 없었고 총명함과 미모를 갖춘 관기(官妓)로 이름을 날렸지만, 만덕은 기방의 삶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몇번이고 관을 찾아가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신분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그녀를 딱하게 여긴 제주목사가 기적에서 이름을 삭제해주었지요.


어린시절은 고생스러웠지만, 남자에게 기대어 살기보다 스스로 돈을 벌어 자립하는 보람을 알게 했다는 점에서 만덕에게는 오히 려 고마운 시간이었을 겁니다. 23세에 양인의 신분을 되찾은 만덕은 모은 돈을 털어 제주 건입포 일대에 객주(客主)를 차렸습니다.


객주로 많은 돈을 번 만덕. 그녀는 장사꾼들이 제 집처럼 편안히 드나들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당시 객주는 여관이자 식당이면서 육지의 생필품과 제주의 특산 물을 거래하는 중개상 역할을 하는 곳이었답니다. 총기있고 계산이 빠른 그녀는 점차 늘어나는 무역 거래를 선점하기로 결심하고 육지의 쌀과 소금을 독점적으로 취급하게 됩니다. 만덕의 객주집은 금세 제주 최대의 무역거래소로 자리잡았지요.

또한, 남자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의류와 장신구, 화장품 거래-제주의 양반댁 부인들에게 공급하기 위한-와 같은 틈새 시장을 뚫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물가 변동의 흐름을 파악하고 적절한 시기에 물건을 사고 팔아 엄청난 차액을 남겼다고 합니 다. 이처럼 과감하고 적극적인 경영법으로 기녀출신 독신여성인 만덕은 제주에서 자수성가한 갑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지요.

img_214_3071_2.jpg그녀가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된 것은 1795년. 1792년 이래 제주에는 흉년과 태풍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굶주려야 했습니다.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제주목사인 심낙수(沈樂洙)는 조정에 구휼미 2만석을 요청했으나, 제주로 오던 5천 섬의 구휼미를 실 은 배들이 그만 침몰하고 맙니다.


아사하는 빈민들의 모습을 본 만덕은 1천금을 내어 육지에서 쌀을 사오 게 했습니다. 들여온 양곡의 10분의 1은 친척과 그동안 은혜를 입은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 450석은 모두 관에 보내어 구휼미로 쓰게 했지요.
"정조 19년(1795년) 탐라에는 큰 기근이 들어 많은 백성 들이 죽었다.… 만덕이 천금의 큰 돈을 내놓아 육지에서 양곡을 사오게 하여 450석을 관청에 내놓았다. 오래 굶어서 살가죽이 들떠 누렇게 된 주민들이 이 소식을 듣고 관청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관에서는 그들의 급하고 그렇지 않음을 참작하여 형편에 맞추어 쌀을 나눠주었다. 그 후 주민들은 거리로 나와서 "우리들을 살려준 은인은 만덕"이라면서 그 은혜 를 칭송하였다." -채제공(蔡濟恭)의 증만덕(贈萬德)에서

제주민들은 '기부천사' 만덕을 칭송했고, 제주목사는 조정에 장계를 올려 그녀의 행적을 알렸습니다. 보고를 받고 감동한 정조는 친히 "무엇이건 소원을 들어주라"고 하명했습니다.

나랏님으로부터 '백지수표'를 받은 것 이나 마찬가지였던 만덕. 그러나, 그녀가 제시한 소원은 대단히 의외의 것이었습니다.
"첫째, 대궐에 들어가 임금을 알현하고 싶다.
둘째, 절경이라는 금강산 비로봉에 올라 일만이천봉을 구경하고 싶다."


당시 제주에는 법으로 출륙금지령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남자는 허가증이 있어야 섬을 떠날 수 있었고, 제주의 여성들은 평생 바 다를 건너 육지에 오를 수 없었으며 육지 사람과의 혼인도 금지되어 있었지요. 게다가 평민 여성이 입궐해 왕을 알현하는 것 역시 당시로선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덕은 이 관습의 굴레들을 벗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득의 '발칙한 소원'을 전해들은 정조는 그녀의 희망을 이뤄주기로 합니다. 만덕에게 내의원 의녀반수(醫女班首, 당시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였다함)의 벼슬을 내려 궐에 들어오게 했고, 만덕은 정조와 중전, 세자빈을 알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가 1796년(정조 20년) 가을, 만덕의 나이 57세였습니다.

img_214_3071_1.jpg왼쪽그림은 만덕이 정조를 알현하는 장면의 상상도

서울에서 만덕은 지금의 김연아 선수 못지않은(?) 유명인사가 됩니다. 당당 히 재능과 실력으로 운명을 개척한 여성인데다, 선행으로 왕가의 인정까지 받았으니 손가락질이 아닌 감탄의 대상이 된 것이지요 .

채제공의 '번암집'에는 "만덕의 이름이 한양에 가득하여 공경대부와 선비 등 계층을 가리지 않고 모두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보고자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6개월 정도 선혜청에 머물며 채제공, 정약용 등 고관대작들을 만나고 사대부들의 초대를 받았는데요, 체제공은 만덕의 행적을 다 룬 소전(小傳)을 썼고, 박제가를 비롯한 사대부들이 그녀를 위한 시를 지어주었습니다.

이 시들을 모아 한권의 시집으로 만들었는데, 다산 정약용이 시권의 발문을 썼다니 얼마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 습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에도 만덕에 대한 언급이 남아있습니다.

이후 만덕은 1797년 늦은 봄에 금강산을 구경하고 제주도로 돌아갔으며, 1812년 사망했습니다.

img_214_3071_3.jpg왼쪽사진은 제주 모충사에 있는 김만덕 묘비

얼 마 전, 오만원권 지폐 도안에 들어갈 여성인물 후보 중 한 명으로 김만덕이 언급되기도 했었지요. 결국 2007년에 신사임당으로 결 정이 되긴 했지만, 현대에 맞는 여성상을 기린다는 의미에서는 김만덕이 훨씬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었나 아쉽게 느껴졌었습니다.

변방이었던 제주의 인물이라는 점, 태생이 평민이고 기생 출신이었다는 것 때문에 김만덕은 그 상징성에 비해 너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위인으로 남은 듯 합니다.

모 방송사에서 올 하반기 방영 목표로 김만덕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니('대장금 삘'이 날 듯 하지요), 그녀의 시대 를 앞서간 능력이 현대의 '알파걸'들에게 귀감이 될 기회가 늘어나길 기대해 봅니다.
-참고 자료:

http://www.manduk.org/ 김만덕기념사업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67622

http://h21.hani.co.kr/section- 021174000/2008/07/021174000200807300721055.html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 aid=20081125002877&subctg1=&subctg2=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742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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