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햇볕이 되고 싶은 아이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0-12-26 01:00
조회
174

9k=

아직은 바람 끝이 싸아한 초봄 어느 날이었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양달에 옹기종기 모여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에헴, 나는 경찰이다..."

"음...나는 엄마해야지."

"엄마가 뭐야 엄마가..."


저마다 배역을 정하는 데. 한 아이가 말없이 앉아있었습니다.

"야, 너는 뭐 할 거야? 빨리 정해봐."

친구들이 재촉을 하는데도쭈뼛대기만 하던 아이가 뭔가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햇볕이 잘 드는 벽으로 뛰어가, 기대서서 말했습니다.


"난 햇볕이야. 너희들 모두 이리 와봐."

"햇볕이라니!"


잠시 어리둥절했던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가서 있는 아이 옆에 

도토리 같은 몸을 기댔습니다.


"와, 따뜻하다."

아이들의 정겨운 모습을 보고 있던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 햇볕이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넌, 왜 햇볕이 되고 싶은데?"   

"........"

아이는 쑥스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우리 할머니가요.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데 거기는 햇볕이 없어서 춥대요."


시장 모퉁이 난전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를 아주 잠깐만 비추고 

금방 다른 곳으로 옮겨가 버리는 햇볕이 미웠다는 아이.

아이는 이 다음에 크면 햇볕이 되어 할머니를 하루종일 비춰드릴거라며

해처럼 환하게 웃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기특한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마치 햇살을 가득 품은 것처럼 두 사람의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생즉여(生卽與), 산다는 것은 주는 것입니다.

주는 마음은 너그러운 마음이요, 

주는 손은 축벽받은 손이요,

주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재물이나 가르침을 아낌없이 남에게 베푸는 것을 

불교에서는 보시(報施)라고 합니다.


남에게 베풀고 자랑하는 것은 결코 순수한 마음이 아닙니다.

가진 것은 적어도 모든 것을 다 주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비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창고에는 늘 행복이 가득합니다.


또한 기쁜 마음으로 베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기쁨을 보상으로 받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괴로운 마음으로 베푸는 사람들은 

기쁨 대신 고통을 보상으로 받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괴로움도, 기쁨도 없이

무념무상으로 베푸는 사람들입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여..."   (마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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