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과부의 두 렙돈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0-12-29 00:36
조회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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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유럽의 한 왕이 크고 화려한 교회를 세웠습니다.


설계에서부터 건축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돈을 들여

크고 화려한 교회를 완성하고 교회 정문 대리석에

자신의 이름을 크게 새겨놓고 준공식도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그런데 준공식을 한 그날부터 이틀씩이나 계속하여

왕은 아주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천사가 내려와서 대리석에 새겨놓은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알지 못하는 이름을 새기는 꿈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자기의 이름 대신 새겨진 이름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달이 밝자마자 꿈에 본 이름의 주인공을 온 나라를 수소문하여

찾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누구도 그 이름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야 그 이름의 주인공을 데리고 왔는데

뜻밖에도 아주 초라한 모습의 과부였습니다.


기가 막히고 화도 난 왕은 

"저 크고 화려한 교회를 세우는데 네가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사실대로 말하라"

고 호령을 내리며 다그쳤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불쌍한 과부는 부들부들 떨면서

모기만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저 같은 것이 무엇이 있어서 바쳤겠습니까? 

아무 것도 바칠 것이 없는 비천한 신세인 저는  그저 돌과 나무를 실어 나르는 말에게 

짚 한 단을 썰어 먹인 것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왕은 세상적으로 많은 것을 바쳤으나  
하나님을 위하여 바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과부는 가진 것이 없어 마음으로는 간절했는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짚 한단 밖에 내 놓은 것이 없습니다.


전 재산인 두 렙돈을 몽땅 헌금궤에 넣은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연상되는 이야기입니다.


중세의 영성가인 베르나르드 끌레보르는 

사랑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것,

둘째는 나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셋째는 하나님을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주장에 우리가 바치는 헌금, 헌신을 연결해보면

"어떤 것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는 길인가?" 의 해답이 나옵니다.


교회에 바치는 것이 나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첫 번째 유형,)

나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함이 아닌지

(두 번째 유형),

하나님을 위하여 나를 도구로 쓰임을 받으려고 하는 것인지

(세 번째 유형)

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것은 대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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